비교적 노출된 나한일의 삶이 고통스러웠다면 정은숙의 삶 역시 녹록지 않았다.
중견배우 나한일이 동료 배우 정은숙(본명 정하연)과 재혼 소식을 알렸다. 지난 2016년 해외 부동산 투자를 미끼로 수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그가 교도소로 면회 온 정은숙과 재회하며 이뤄진 만남이다. 알고 보니 이들은 40여 년 전 연인 사이였다가 결별 후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한 사연을 갖고 있었다. 부부를 만나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정은숙 역시 짧은 결혼생활을 끝낸 아픔의 시간이 있었고,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며 살았다. 두 오빠가 세상을 떠나면서 조카들을 키우는 것이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 됐다. 본인의 아이도 있었다.
“오빠가 돌아가시고 새언니도 집을 나가고. 아이들을 엄마와 제가 책임져야 했어요. 어린아이들과 조카들이 불쌍해서 제가 살아야 했어요. 방송국 일을 못 하겠더라고요. 살기 위해서 장사를 시작했죠. 카페도 하고 음식점도 하고, 목욕탕도 했어요. 다행히 다 잘되어서 금방 집을 샀어요.”
경제적으로 생계는 유지했지만 여자 혼자 가장 노릇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현실이 고단해서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도 있었고, 속세를 떠나 잠깐 출가한 적도 있다.
“열심히 사니까 복이 오는구나 싶어 절에서 기도를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어요. 절 생활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때까지 번 걸로 아이들 학교는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절에서 살겠다고 하고 나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큰오빠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큰오빠 아이들이 중학생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제가 맡아서 키워야 했어요. ‘절에 들어갈 팔자는 아니구나’ 하고 나와서 큰언니, 엄마와 함께 아이들 키우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키운 조카들을 결혼까지 다 시킨 게 2010년이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했구나, 시원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엄마가 편찮으셨다. 엄마는 요양원에 다니고 병원 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셨고, 그녀는 또 호되게 아팠다.
“엄마가 돌아가시니 세상이 무서웠어요. 이제야 세상 짐을 다 내려놓은 상황이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과정도 싫고, 남자를 만나겠다는 마음도 없었죠. 그러던 중에 이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어머니가 보내주셨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정은숙은 두 사람의 만남에 돌아가신 어머니들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조카들도 다 키우고 후련한 마음으로 이제 봉사활동만 하면서 살아야겠다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 단순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엄마가 ‘나 서방’이라고 부르면서 좋아하셨는데, 우리를 이어주신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막내며느리로 집안 대소사에 참가하면서 조카들과도 가족처럼 지냈고, 우리 집에서도 그랬거든요. 그 사람이랑 결혼해야 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나한일은 2011년 옥중에 있을 때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정은숙을 ‘막내며느리’라 부르며 예뻐했던 어머니다.
부부는 2년째 함께 살고 있다. 남들과 다르게 시작한 결혼생활이지만 신혼 풍경은 여느 부부들과 비슷하다. 청소와 설거지, 빨래로 서로 잔소리하는 평범한 일상이다. 당연히 소소한 의견충돌도 있다.
“각자 살아온 습관이 있으니까 부딪히기도 하죠. 아직 못 고친 부분도 있고요. 앞으로 남은 세월이 있으니까 심심하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 사람도 저도 이제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마음 편안한 게 우선이죠. 앞으로 둘이 같이 좋은 일하고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도록 아름답게 늙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지가 중요한 연예인으로서 치명타를 입은 것이 사실인지라 아직 나한일에게 구체적인 방송 계획은 없다. 그러나 언제든 기회가 되면 작품으로 재기하고 싶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제가 수장으로 있는 해동검도는 저를 지키는 힘이에요. 많은 체육관이 문을 닫았지만 예전 수준으로 활성화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작품을 언제 시작할지 모르지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살고 싶습니다.”
각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이루어진 만남이기에 두 사람은 앞으로 더 귀하고 소중하게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40년 전에 결혼해서 살았으면 그사이 헤어졌을지 잘살았을지 모르잖아요. 하나님이 마지막은 같이 가라고 만나게 해주셨다 생각하고 기쁘게 살아가고 싶어요. 저는 이 사람 만나서 좋아요. 두 어머니가 이어주신 것 같기도 하고요.”
나한일은 다시는 후회하지 않을 사랑을 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30년 후에 또 “후회합니다”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따뜻하고 짠한 표정으로 나한일을 바라보던 정은숙이 “가여운 남자예요”라면서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