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고있는 가수 이지연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데요. 이지연은 80, 90년대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인기가수였답니다.
이지연은 그당시 우리가요계에서 청순가련형의 미모로 뭇남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지연이 발표했던 노래 ‘바람아 멈추어다오’와 ‘마이 러브’는 대중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많은 애청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전설적인 명곡으로 남아있습니다.
데뷔한 해 연말 KBS 가요대상에서 신인가수상을 차지한 이지연은 이미연, 이상아, 김혜수와 더불어 책받침 여신이 되었는데요.
그 당시 매우 드믈게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고 있었던 이지연을 우리가요계의 최초의 아이돌스타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지연은 1987년 ‘그때는 어렸나봐요’로 가수로 데뷔했는데, 그 당시 이지연은 18살의 나이로 청순하고 풋풋한 하이틴스타로 큰 주목을 받았답니다.
80년대 후반은 섹시한 미모보다는 청순미를 최고로 여기던 시절이라서,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청순가련형의 미모를 간직하고 있던 이지연은 대뷔하자 마자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았답니다.
또 사랑을 주는 팬이 있는 반면 악플을 달거나 물리적. 심리적으로 괴롭힘을 가하는 안티팬들도 있는데요.
다만 청순한 이미지로 활동한 탓에 남성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한편 일부 여성 팬들에게는 시기 어린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요.
그 때문인지 2집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지연은 황당한 루머 두 가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동갑내기 가수 이상은을 때렸다는 것과 라디오방송 중 욕설을 했다는 내용인데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소문은 일파만파 번졌고 심각성을 인지한 이상은이 직접 나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소문은 커지기만 했습니다.
때문에 2집 타이틀곡 '바람아 멈추어다오'가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큰 인기몰이를 할 때도 이지연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지방 행사를 가면 관객들이 야유를 보냈고 사인을 해달라고 다가와 머리카락에 껌을 붙이고 가는 껌 테러도 당했는데요. 스트레스로 몸무게는 48kg에서 40kg으로 빠졌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습니다. 1989년은 이지연에게 KBS와 MBC에서 10대 가수상을 차지하는 영광을 주었지만 노래와 무대, 연예계가 싫어지는 계기가 된 해였지요.
이렇게 80,90년대 발라드의 여성디바로 독보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지연은 1992년도에 돌연 은퇴하게 되는데요.
이지연이 인기 절정의 시기에 은퇴하게 되는 데는 그만한 특별한 사연이 있답니다.
90년도에 한창 여가수로서 인기의 상한가를 치던 이지연은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지연은 10살 연상의 언더그라운드 선배가수 정국진과 열애에 휩싸였고, 심지어 미국으로 함께 떠나서 잠적해버렸답니다.
한참 인기가 초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에 팬과 대중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미국으로 잠적해서, 결혼까지 한 이지연에 대해 대중들은 엄청난 쇼킹을 받았고 그녀에게 실망하게 되었지요.
이지연은 당시 최고의 여성디바로 청순가련한 이미지가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그런데 만 20살의 나이로 선배가수와 눈이 맞아 한창 대중가수로서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야반도주해서 결혼까지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녀를 좋아했던 대중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실망을 하게 됩니다.
이지연은 함께 미국으로 떠났던 가수 정국진과 미국에서 결혼까지 했으며, 92년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제4집 앨범을 내며 가수활동을 재개했지만,
이미 그녀에게 매우 실망한 대중들은 더 이상 그녀에게 열광하지 않고 등을 돌렸답니다.
제4집 앨범의 실패와 대중들의 싸늘한 시선에 염증을 느낀 이지연은 결국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에서 계속 살게 되었답니다.
이후 이지연은 남편 정국진과 미국에서 함께 살면서, 요리사로 전환하게 되는데, 프랑스로 요리유학까지 다녀오면서, 식품영양사자격증과 식품위생사 자격증을 따내는 등 요리사의 길에 매진하게 된답니다.
그런데 2008년 이지연은 미국에서 18년 동안 함께 살아왔던 남편 정국진과 이혼하게 되었답니다.
무려 18년 동안이나 결혼생활을 이어왔던 남편과 이혼하게된 사유는 성격차이와, 두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다는 점 등으로 인한 부부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이후 혼자가 된 이지연은 미국에서 셰프로서의 삶에 더욱 전념해 나갔는데, 미국의 유명호텔의 레스토랑의 전문셰프가 되어서 커리어우먼으로서 명성을 쌓아갔답니다.
오랫동안 갈고닦아온 이지연의 요리실력은 상당한 수준급에 도달했다고 하네요. 이지연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전미요리사협회에서 개최한 요리경연대회에 출전해서, 대망의 은메달을 획득했을 만큼, 그녀의 요리솜씨는 정평이 나 있습니다.
뒤늦게 꿈을 찾은 이지연은 하루 4시간씩 자며 요리 공부에 열중했는데요. 학자금 대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마흔이 다 된 나이에 레스토랑에 막내로 들어가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늘 즐거운 마음이었지요.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일한 끝에 애틀랜타에서 레스토랑 에어룸 마켓을 운영하며 월 2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유명 셰프가 되었습니다.
이지연이 다소 늦은 나이에도 이처럼 셰프로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데는 지난 아픔을 극복하고 새롭게 시작한 사랑의 힘도 컸습니다. 이지연의 새로운 짝이자 사업 파트너는 꼬 르동 블루에서 요리 공부를 하던 당시 만난 동창 코디 테일러인데요. 이지연은 9살 연하인 코디 테일러에게 의지해 힘든 학업을 마칠 수 있었고 졸업 후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마음이 잘 맞는다는 점을 알고 결혼까지 골인하게 되었지요.
2018년 이지연과 테일러는 컬리너리 로컬에서 선정한 '애틀랜타 100대 셰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지연에게 테일러는 남편이자 동업자이면서 힘든 시기를 거쳐 함께 성공을 일구어 낸 동지인 셈. 완벽한 파트너를 찾은 이지연은 지난해 9월에는 푸드앤와인 매거진에서 소개한 미국주별 최고의 바비큐 식당 가운데 하나로 뽑혔습니다.
한편 미국 내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범죄가 이어지자 이지연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인종차별을 중단하라"라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실제로 한 한국인 친구와 코스트코에서 쇼핑을 하다가 "뒤로가", "손 씻어", "입 씻어" 등의 비하 발언을 들었다고 고백한 이지연은 "아시아계 여성들은 강인하고 섬세하다"면서 "나는 아시안 여성임이 자랑스럽다"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는데요.
가요계에서 최정상의 자리에 있던 스타가 자신의 명성을 모두 내려놓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서 바닥부터 성공을 일궈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강인한 아시아계 여성의 면모를 선보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이지연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지연은 결코 보통여성이 아니라고 느껴진답니다.
한때 한국을 쩌렁쩌렁하게 할 만큼,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던 인기가수였는데, 이지연은 1992년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오랫동안 남편의 뒷바지를 하는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살아왔답니다.
그런 이지연이 아이를 두 번이나 유산하는 엄청난 시련을 겪기도 했으며, 그것이 결국 전남편과 이혼을 하게 된 동기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아이의 유산과 이혼의 아픔으로 크게 좌절했을 법한 그녀가 시련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전문요리사로서 거듭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실로 놀랍기만 합니다.
40대의 늦은 나이에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요리사자격증을 두 개나 따내고, 그 힘든 호텔 레스토랑에서 셰프로서의 오랜 경력을 쌓아왔고,
지금은 미국의 100대 셰프(요리사)에 선정되었을 만큼, 미국에서 전문요리사로 커다란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20살의 어리고 청순한 소녀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 많은 시련과 역경을 견뎌내면서 갖은 고생 끝에, 미국에서 인정받는 전문셰프로 우뚝 올라설 수 있었다니, 정말 인간승리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내는 것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던 이지연이 앞으로는 희망과 행복이 가득한 꽃길만 걷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노래하는 모습 자주 봤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참고로 이지연은 1970년생으로 올해 나이가 52세랍니다.